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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표절에 관하여

표절에 관하여
  • 저자엘렌 모렐 앵다르
  • 출판사봄날의책
  • 출판년2017-12-08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2-22)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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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도록 금기시되었던 ‘표절’이라는 주제는 이제 과거보다는 더 자유롭게 입에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표절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다. 창조적인 모방과 뻔뻔한 베끼기 사이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고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잣대를 갖기가 힘든 사안인 만큼, 심리적?도의적 차원의 고찰이 불가피하고, 그런 만큼 객관성 확보가 어렵다. 인터넷을 통한 지식정보의 접근이 현저히 쉬워진 오늘날 표절 문제는 과거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표절 유혹이 더 많아졌는가 하면, 표절 적발이 더 쉬워지기도 했다. 저자 엘렌 모렐-앵다르는 표절 문제를 시의에 맞게 규정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그는 이 문제를 역사적으로 고찰할 뿐 아니라, 창작과 모방의 관계를 밝히고, 차용과 저작권 침해를 구분하는 등, 우리의 의식 속에서 혼동을 일으켰던 개념들을 잘 정리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표절에 관한 풍부한 사례들을 통해 실제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또 이해관계의 충돌로 이어지는지를 증명한다. 이 책은 그동안 막연히 회자되던 표절 개념을 훨씬 체계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도와준다.



    표절에 관하여 누구도 명확히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표절은 오랫동안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창조적 변형과 추악한 범죄행위 사이에서, 이제는 무엇이 표절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것이 논의와 판단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은 표절에 관한 공시적, 통시적 고찰을 통해 그 역할을 꽤 유용하게 해낸다. 이 무거운 주제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무척이나 흥미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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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도록 금기시되었던 ‘표절’이라는 주제는 이제 과거보다는 더 자유롭게 입에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표절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다. 창조적인 모방과 뻔뻔한 베끼기 사이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고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잣대를 갖기가 힘든 사안인 만큼, 심리적?도의적 차원의 고찰이 불가피하고, 그런 만큼 객관성 확보가 어렵다. 인터넷을 통한 지식정보의 접근이 현저히 쉬워진 오늘날 표절 문제는 과거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표절 유혹이 더 많아졌는가 하면, 표절 적발이 더 쉬워지기도 했다. 저자 엘렌 모렐-앵다르는 표절 문제를 시의에 맞게 규정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그는 이 문제를 역사적으로 고찰할 뿐 아니라, 창작과 모방의 관계를 밝히고, 차용과 저작권 침해를 구분하는 등, 우리의 의식 속에서 혼동을 일으켰던 개념들을 잘 정리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표절에 관한 풍부한 사례들을 통해 실제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또 이해관계의 충돌로 이어지는지를 증명한다. 이 책은 그동안 막연히 회자되던 표절 개념을 훨씬 체계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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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표절과 표절자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펴보자. 그 내용을 저자는 고대부터 훑어내려온다.

    특히 저자는 표절의 개념과 표절에 대한 인식이 18세기를 기점으로 크게 변화하는 점에 주목한다. ‘표절’이라는 명사는 1697년에 출간된 피에르 벨의 ≪역사적 비판적 사전 Dictionnaire historique et critique≫에서 처음 발견되며, 동사 ‘plagier(표절하다)’는 1801년에서야 나타난다. 고대에는 사실상 법적 차원에서의 지적소유권이라는 것이 없었으며, 라틴문학은 오래도록 그리스 대가들을 그대로 차용하곤 했다.

    중세에는 작품이란 흔히 집단작업의 결과이고, 저자의 이름을 드러내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또한 이 시대에 흔히 행해지던 필사를 표절과 동일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다른 한편,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작품에 대한 열광과 열풍이 일부 작가들에게 표절을 부추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다가 인쇄술과 종이의 발명과 더불어 작품의 유통이 활발해지자 표절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고대의 원전들은 인문주의자들의 권위적 준거였다. 이러한 현상은 17세기에도 마찬가지여서 위대한 작가들 중에도 표절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으로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의 경우는 활발한 연구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런 대가들의 차용은 재능 부족에서 비롯된 표절이기보다는 이전의 원전을 바탕으로 개선된 걸작을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서 표절에 대한 대가를 후하게 치른다. 이른바 ‘창의적 모방’, ‘행복한 모방’이 행해졌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을 기점으로 하여 표절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개인’의 출현과 더불어 작품의 소유권 주장도 통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과잉으로까지 이어지는 낭만주의 시대에는 표절이 더 이상 없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표절은 더 교묘한 수법으로 은폐를 꾀하면서 손꼽히는 낭만주의 시인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자행된다. 라마르틴의 그 유명한 시 [호수]도 그 한 예다. 소설가 스탕달도 표절 의혹을 받았고, 뒤마는 노골적으로 도둑질을 해대면서, 자기변호를 한답시고 “신 자신도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을 발명해낼 수 없었거나, 아니면 감히 그러지 않았다. 신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어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요컨대 18세기에 탄생된 저작권 관련법들은 표절을 근절시키지 못했다. 20세기 초까지 표절은 일종의 문학적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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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20세기 초에는 콜라주, 유희적 글쓰기, 상호텍스트성 개념 등으로 인해 표절 문제가 더욱 복잡한 사안이 되어버린다. 더 나쁜 일은, 효율적 생산과 마케팅이 큰 덕목으로 대두되는 이 시대에 윤리 문제보다 금전적 쟁점이 우위에 놓여서 상업적 논리가 ‘창조적’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오늘날, 무수히 쏟아지는 책들 속에서 각 책의 수명은 짧아질 수밖에 없고, 출판사들을 이런 점을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데, 이런 와중에 ‘수익성 있는’ 책을 빨리 출간하기 위해 저자들은 예전보다 더욱 표절 유혹에 빠지게 된다. 유행의 효력, 금전적 이해관계, 출판사끼리의 경쟁, 가명 사용 등이 저작권 침해를 야기하는 요인들이다. 따라서 언론에서 많이 취급되는 주제나 사람들이 선호하는 장르가 저작권 침해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더더욱 심각한 일은 ‘대필’이다. 저자 개념이 작품 개념을 위태롭게 한다. 저자의 이름, 즉 사람의 이름을 토대로 작품의 질이 구축되는 글쓰기는 “작품을 희생시키고 사람에게 바쳐지는 숭배”라는 부조리를 드러낸다. 오늘날의 책 제작 시스템에서, ‘일반 대중’ 독자는 작품보다는 자기가 아는 저자를 읽고, 미디어를 통해 저자의 인생과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신체적 표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또한 문학상 수상자에 열광하여 이로써 문학상은 또 다른 보증수표가 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표절 비난을 훨씬 더 끌어들인다는 양면성을 보인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1980년대 이후로 표절 고발이 더 빈번해져서 언론에서나 법정에서 문학상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베르나르-앙리 레비(1984년, 메디시스상), 타하르 벤 젤룬(1987년, 공쿠르상), 주느비에브 도르만(1989년, 프랑스학술원상) 등이 법정의 피고석에 앉게 되고, 프랑수아즈 사강은 문학상 수상 때문이 아니라 대단한 판매 실적 때문에 표절 비난을 받게 된다. 최근에 와서는 표절이 더 많아지고 표절 비난 또한 더 무성해졌는데, 어떤 때는 빠른 성공을 위해 표절 유혹에 빠지게 되는가 하면, 어떤 때는 경쟁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신빙성 없는 비난을 퍼붓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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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절 글쓰기에 대한 조사는 독창성 개념을 ‘은연중에’ 명확히 한다. 텍스트 차용의 여러 형태를 알아보고, 식별하고, 분류하는 것 등이 문학적 영감의 뒤얽힌 매듭을 드러내 보이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64년에 볼레스와프 나브로츠키는 ≪표절과 저작권≫에서 꽤나 유용한 두 가지 분류 준거를 제안한다. 그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 표절과 전체적 또는 부분적 표절로 구분했다. 변형 없는 차용은 ‘직접적’이라 평가된다. 전체적 차용은 원래 작품의 전체에 걸친 것이다. 부분적 차용은 원래 작품의 일부에만 걸친 것이다. 은폐되고 기만적인 ‘간접적’이고 ‘부분적’인 표절은 어떤 때는 각색을 가장하고, 어떤 때는 패러디라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우연의 일치라고 둘러대기도 하고, 그저 관념의 유사성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허락 받지 않은 직접적 복제는 부분적이라 해도 저작권 침해에 속한다. 반면, 글자그대로 차용하는 것이라도 인용은 가장 용납되는 차용이다. 인용은 인용부호 안에 넣어 소개하고, 제한된 길이를 지키고, 원저자 이름을 명기하면 표절이 아니다. 패러디나 파스티슈(모작)는 한 작품을 모방하기는 하지만 풍자나 오마주를 겨냥한 것이지, 그 작품을 자기 것인 양 가로채려는 것이 아니다. 패러디는 자신의 지적 노력을 통해 독창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차용요소를 충분히 변형시켜야 한다. 그리고 패러디에 고유한 풍자 의도가 지켜지도록 비평적 요소가 감지될 수 있어야 하며, 패러디 작품의 존재가 원작과 혼동을 초래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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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절 개념과 혼동할 가능성이 가장 큰 파스티슈(모작), 패러디, 위작, 후속작(또는 속편), 이 네 가지 양식의 다시쓰기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표절은 유동적인 윤곽을 갖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패러디가 표절과 구분될 수 있으려면 캐리커처 효과와 관련된 희극적 차원과 과장을 고조시켜야 한다. 파스티슈는 표절이 표절된 저자의 특징적 문체효과를 지워버리려 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그런 효과들을 드러낸다. 그리고 위작이 표절과 구별되는 점은 서명에 있다.

    다시 말해, 패러디는 대략적이고 희극적인 모방으로 축소된다는 점 때문에 표절과 쉽게 구별된다. 패러디는 모방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드물고, 사실상 모방은 다시쓰기 중에서 가장 하기 힘든 유형이다. 파스티슈처럼 한 작가의 핵심적인 특징을 재현하기 위해 그 작가의 문체와 동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델의 기법이나 문체를 정묘하게 취하여 그 모델과 혼동케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파스티슈는 원래 텍스트에 대한 예리하고 심화된 지식을 전제로 한다. 한편, 파스티슈와 위작은 제작원칙이 서로 다르다. 하지만 그 둘은 유명한 예술가의 새 작품인 양 믿게 만들려고 모델의 방식을 가능한 한 아주 정확히 재현하려 애쓴다. 두 유형의 모방을 가르는 것은 오로지 서명이다. 파스티슈 작가는 원전을 언급하면서 아울러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한다. 그러나 위작을 쓴 자는 모델 저자의 이름으로 서명하여 그 저자 이름에 결부된 상품가치나 문화적 가치를 착복하려 한다. 다른 한편, 표절자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자기 것으로 삼아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 한다. 그래서 위작과 표절은 설사 동기는 다르다 해도 둘 다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런데 표절자가 참기 어려운 무능력의 미봉책으로서 술책을 쓴다면, 위작자는 그런 마음상태가 아니라 대개 경제적 이익을 위해 그러하다. 이미 유명세를 탄 작품들에 대한 속편 또는 후속작을 원저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펴내서 원저자가 쓴 것인 양 혼동을 일으키거나, 원작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이득을 취하는 일도 종종 있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셜록 홈스의 작품이 그런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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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진짜’ 표절자는 알려지지 않은, 잊힌, 심지어 출간되지 않은, 죽은, 저작권이 없는 저자들을 선택하려 한다. 인터넷상에서의 추적에 맞서기 위해 아직 디지털화되지 않은 작품이나 심지어 출간되지 않은 작품을 취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출판사에서 퇴짜 맞은 원고의 일부가 출판물에서 발견되는 일도 있다.

    그러니 온갖 변주로 변화된 ‘위장된 인용’의 기술을 누가 알겠는가? 생존 작가보다는 죽은 저자를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후’ 인용문, 한 문단에서 여러 원전을 뒤섞은 ‘혼합’ 인용문, 알리지 않은 직접 차용을 자유간접화법 속에 끼워넣을 수 있게 해주는 위대한 고전인 ‘주조’ 인용문, 큰 인용문을 가리는 작은 인용문인 ‘차폐’ 인용문. 그리고 차용들의 숲을 때때로 감추는 각주로 보내진 주석들! 박식의 효과를 통해 그럴싸해지는 참고문헌 목록은 베끼고 흡입된 저서는 빼놓는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쓰게 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일들을 하느라 시간을 버리는 사람들은 표절의 아르센 뤼팽인 순수주의자들밖에 없다. 궁극의 사기라고나 할까….

    일단 범죄가 발각되면 사기행위에 거짓말이 더해진다. 그리고 그런 때 온갖 모습이 드러난다. 현학적인 체 하는 자, 허풍쟁이, 또는 참회하는 자…. 표절자는 온갖 수를 다 써본다. 세심한 자는 “나는 당신이 유용하다고 평가할 온갖 확인 작업에 따를 준비가 돼 있습니다”라고 할 테고, 바쁜 사람은 “내가 책임진 일들이 미친 듯 빠르게 돌아가서 그렇게 됐습니다”라고 할 테고, 이해 못한 사람은 “위대한 작품은 선배들의 작품에서 자양분을 취합니다”라고 할 테고, 구원자는 “나는 그의 책을 망각으로부터 끌어낸 겁니다”라고 할 테고, 이타주의자는 “나는 약탈하지 않아요, 대중의 이익을 위해 확산시키는 겁니다”라고 할 테고, 충동적인 사람은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라고 할 테고, 쾌락주의자는 “베끼면 기분 좋아져요”라고 할 테고, 나쁜 도박사는 “그건 출판사 잘못이에요” “또는 컴퓨터 잘못입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참회하는 철학자를 빼놓으면 아직 아무것도 못 들은 거나 마찬가지다. “인생은 장애물들의 긴 연속이고, 나는 쇠퇴했어요. 나는 내가 한 잘못만큼 후회하고 있어요. 그 잘못의 유일한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교훈이 나를 성장시키고, 그 시련으로 나는 이제 더 강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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