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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먹는 인간

먹는 인간
  • 저자헨미 요
  • 출판사메멘토
  • 출판년2017-03-22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0-10)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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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하면서 질주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일관된 자세다.

    이렇게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된 현장 보고를 읽고 나면 한동안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먹는 인간』은 내가 최근 10여 년 동안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고 관능이 넘쳐 나는 실재다.”

    ―후나도 요이치(船戶與一·소설가)



    “보이지 않는 곳을 보려 하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

    저자의 장렬한 기록이다.”

    ―아마존재팬 독자



    1.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헨미 요,

    그가 이방의 도시에서 건져 올린 장대한 식(食)의 인간 드라마



    이 책은 교도통신 외신부 데스크로 일하던 헨미 요(邊見庸)가 1992년 말부터 1994년 봄까지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과 음식에 관한 현장 보고로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교도통신 칼럼으로 연재되던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키다가 1994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후에 비평가들의 절찬을 받은 저자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먹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품고 떠난 저자가 찾은 나라는 방글라데시, 베트남, 필리핀, 독일, 폴란드, 크로아티아, 에티오피아, 우간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한국 등 15개 국. 역사, 정치, 사회적으로 분쟁을 겪었거나 여전히 위험과 갈등이 산재하는 곳들이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식(食)과 생(生). 먹는 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의 복잡 미묘한 행위를 통해 ‘삶의 근원’이 무엇인지 되돌아본다. 여행의 원칙은 현지 사람들이 먹는 것을 함께 먹을 것. 그 원칙 아래 저자가 접한 음식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간직한 사연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다. 저자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 침샘을 자극할 정도로 활력이 넘치게 먹는 행위에 열중하는 사람들, 민족과 종교도 어쩌지 못하는 맹렬한 식욕의 굶주린 사람들, 전쟁의 공포에 짓눌려 식욕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에 밀착해 들어가 그들이 간직해온 이야기와 기억을 나누어 받아먹는다.

    ‘취재’라고 하면 모든 것을 거시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저자는 사건과 사고에 판에 박힌 듯한 의미를 부여하는 기자의 습성을 벗어던지고 평소에는 스쳐 지나칠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언론이었다면 삭제했을 장면들이 얼굴을 내밀고 빛을 낸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함몰된 풍경을 끝까지 추적하는 저널리스트의 본능적인 감각에, 작고 미미한 것들을 읽어내는 작가의 섬세한 눈길이 더해진 덕분이다. 그 때문에 이 책이 “너덜너덜한 인간세계”의 풍경에서 포착한 ‘먹는 인간’의 모습은 애잔하고 슬프지만 풍요롭고 아름답다.

    저자는 『자동 기상 장치(自動起床?置)』로 아쿠타가와상, 『1★9★3★7』(이쿠미나)로 시로야마사부로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시집 『효수한 목(生首)』으로 나카하라주야상, 『눈의 바다(眼の海)』로 다카미준상을 받은 시인이기도 하다. 이는 저널리즘과 문학이 아름답게 결합된 명저로 평가 받는 이 책에서 여행기나 취재기를 넘어서는 오묘한 빛과 질주하는 힘, 그리고 팽팽한 긴장을 맛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2.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어라.”

    거시에 함몰된 미시적 풍경을 찾아 떠난 2년의 기록



    저자는 교도통신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특종을 연거푸 터뜨리다가 결국 중국 공안의 감시를 받고 국외 퇴거 처분을 받았을 정도로 집요한 기자 정신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어느 날 분노와 슬픔을 제거한 채 냉정하고 재빠르게 세상을 분석하는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타자의 기쁨, 괴로움, 신음을 느끼지 못하게 온몸이 차단된 듯 감각의 마비 상태가 왔기 때문이다. 몇십, 몇백 줄의 기사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다고 믿은 자만과 오만의 대가라고 여겼다. 2년여 간 세계를 떠돌며 1주일 동안 취재하고 글을 쓴 뒤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지속한 것은 이렇듯 잃어버린 신체성을 되찾기 위한 저자만의 지독한 방식이기도 했다.

    그즈음 ‘기갈’과는 거리가 먼 일본의 ‘포식’ 상황도 저자의 여행을 부추겼다. 광풍처럼 몰아친 미식 열기에 혀와 위는 점차 값비싸고 고급스런 맛에 길들여졌다. 지금, 여기 한국과 다를 바 없는 광경이다. 게다가 일본은 모든 가치와 의미를 상품화와 소비로 환원해버리는 고도의 소비 자본주의 사회. 이 사회에서는 사람이 먹고사는 일의 본래 가치와 의미도 벗겨 버린다. ‘식(食)’의 본질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먹는 행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한 곳을 찾아 떠난다.



    3. 기아, 전쟁, 재해, 빈곤의 현장에서 마주친

    속절없이 애절한 식(食)의 장면들



    18세기 프랑스의 미식가인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은 『미식 예찬(Physiologie du gout)』에서 “짐승은 먹이를 먹고,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 교양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먹는 법을 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사람도 가끔 짐승과 똑같이 ‘먹이를 먹는다.’”라고 답한다. 잔반(殘飯)을 먹는 방글라데시 다카의 빈민, 에이즈에 감염되었지만 달리 먹일 게 없어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우간다의 엄마와 아기,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에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체르노빌 사람들……. 이들에게 먹는 일은 음식의 부패, 감염, 오염 여부를 떠나 생존을 건 절박한 사투다.

    음식은 때론 질투와 분쟁, 갈등의 원인이나 차별과 살해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미얀마의 탄압과 인종 청소를 피해 방글라데시로 피란 온 이슬람 소수 민족) 캠프에 감도는 주민과 난민 사이의 묘한 긴장은 구호식품을 둘러싼 원망과 질투가 빚은 ‘음식의 한’ 때문이다. 일본이 재일 한국인, 중국인, 오키나와 출신자들을 ‘먹는 것’의 차이로 차별했듯이, 독일의 네오나치는 ‘냄새가 난다’ ‘야만인’이라며 양고기와 향신료를 많이 쓰는 터키 음식을 빌미삼아 터키 이민자들을 공격한다. 영양실조와 결핵으로 죽어가는 소녀 파르히아처럼 배고픔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소말리아 난민들이 받은 구호 식품은 싸구려 개밥보다 못하다. 반면, 소말리아를 도우러 온 각 국 부대의 휴대식에는 쇠고기 적포도주 찜, 리소토, 테린, 포타주 같은 파티 음식이 넘쳐 난다. 음식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1993년 러시아 함대에서는 장교들의 조직적인 식량 부정 유출이 있었고, 그 피해자들인 신병을 대상으로 군대 내 가혹행위까지 더해져 네 명의 신병이 죽음에 이른다.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음식 살인’이다. 먹기 위해 사람을 사냥한 일도 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필리핀 민다나오 섬 키탄그라드 산속에 숨어 있던 일본군 30여 명은 인근 마을 주민 수십 명을 살해하고 ‘먹었다’. 당시 산에는 멧돼지, 사슴, 원숭이도 있었고 산을 조금 내려가면 토란도 자라고 있었다.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었다. 잔류 일본군 토벌에 나섰다가 자기도 모르게 사람 고기를 먹게 된 알레한드로 살레라는 노인의 안내를 받고 현장을 찾은 저자는 무엇이 인류 최대의 금기를 깨게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다고 읊조린다.

    그럼에도 음식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잊게 해주고 영혼의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저자는 1994년 일본대사관 앞에서 자살 시도를 한 위안부 할머니들(김복선, 이용수, 문옥주)이 또다시 자결하는 일을 막기 위해 10여 일간 이들을 따라 다닌다. 죽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는 그들도 밥을 먹는다. 50년 전 퍼석퍼석한 밥과 된장국, 단무지를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시작되던 그 일이 ‘끼니’를 먹는 동안에는 잊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저자는 울면서 “그래도 드십시오. 언제까지고 밥을 드십시오.” 하고 바란다.



    4. 체제와 종교, 권위주의의 억압에

    틈새와 균열을 내는 ‘먹는 쾌락’을 포착해내다



    ‘먹는 것’만큼 인간에게 쾌락을 주는 것도 없다. 왜 감옥, 종교, 독재자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식욕’을 관리하려 드는지 보라. 그러나 식욕은 억누르기 쉽지 않다. 언제든 틈새를 찾아 정직하게 분출한다. 통일 전 동독이 운영하던 브란덴부르크 교도소를 찾은 저자는 채소의 풍미가 빠지고 짠맛만 나는 ‘죄인의 식사’를 함께한다. 이들이 형편없는 식사에 길들여진 듯하지만 감자를 훔쳐서 몰래 술을 만들어 마신다. 폴란드 공산정권의 마지막 독재자인 야루젤스키 전 대통령은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에게 식사는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허기를 달래기 위한 목적일 뿐이었다. 그러나 권력을 내려놓은 후 ‘와플’의 맛을 알아버렸다고 죄의식 가득한 목소리로 저자에게 고백한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인 사이에 피로 피를 씻는 분쟁이 한창일 때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난민 급식소를 찾은 저자는 예순여덟 살의 이슬람 여성 니콜라가 얼굴빛도 변하지 않은 채 돼지고기를 씹어 먹는 모습을 본다. 민족이나 종교에 대한 자부심보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먹다’라는 인간의 필수불가결한 영역으로 파고들어가서 저자가 본 장면들은 이렇듯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5. 탄탄한 단편소설 읽는 기분을 전해주는 문학적 필치의 글들



    이 책이 가진 펄떡이는 생명력, 관능성은 저자가 세계 곳곳에서 만난 맹렬하고도 활력 넘치게 먹는 인간들 덕분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호찌민으로 가는 열차를 탄 저자는 난파선 화물창 같은 곳에서도 어떻게든 자세를 잡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48시간을 보낸다. 정차할 때마다 먹을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우르르 차 안에 밀려들어와 땀에 젖은 손이 음식을 건네고, 지폐가 날아다니는 풍경은 그 무엇보다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필치로 쓰였다. 또 폴란드 탄광마을에서 맛본 수프 보그라치, 아드리아 해의 고기잡이배에서 먹은 정어리, 러시아 이투루프 섬에서 먹은 우하(생선) 수프에 관한 일화는 ‘먹는 인간’과 ‘먹는 행위’에 대한 저자의 한없는 애정을 담고 있다. 탄탄한 구성의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는 이 문학적 필치의 글들은 저자가 세계 도처에서 만난 애처롭고 슬픈 ‘먹는 인간’의 장면을 넘어, 결국 인간에게 먹는 행위가 얼마나 순수하며 정직한 일인지, 그리고 먹고 살아가는 행위가 얼마나 숭고한지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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